“아아, 이 나라도 이제 끝인 건가,
아직 못 본 성인 소설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다 못 보고 죽는 게 원통하구나.”
우리의 비통한 근대사에 관한 가장 유쾌하고 포복절도할 농담
오락성과 소설적 재미, 기발한 언어유희
2012년 새해와 함께 시작된 본격 대중소설의 신호탄
[작품개요]
이완뇽과 김명도는 허너나라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하나나라의 왕에게 보고하려 하지만 주색에 빠진 하나나라 왕은 둘의 보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다 허너나라가 공격해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지만 이미 때는 늦어 결국 허너나라에 굴욕스럽게 패배하고 만다. 그러자 하나나라왕은 그 책임을 이완뇽과 김명도에게 돌리며 둘의 직위를 파하니 졸지에 둘은 실직자 신세로다.
직업을 잃고 앞으로 살 궁리를 하던 둘은 하나나라는 이미 망해버렸으니 허너나라인이 되어야만 살 수 있다면서 나라를 버리고 허너나라인이 되기로 결심하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마침 허너나라에서 온 사신이 감옥에 갇혔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는구나.
[차례]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본문]
여러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며 제각각 감옥에 갇혀 생긴 불편함을 떠들어댔다. 애국노는 이들의 처지가 딱하고 불쌍했지만 마인 장군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하나나라 놈들이 소란 피우지 말라는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알 수 없는 언어로 시끄럽게 구니 짜증이 솟았다.
“이 뒈지 세끼들. 주융히 언 허먄 무주리 족야바리갰더.”
마인 장군의 지시는 없었지만 이완뇽은 그의 말을 알려야 할 것 같아 하나나라인들에게 통역했다.
“여러분. 만약 계속해서 떠들면 여러분 모두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부디 조용히 하세요.”
이완뇽의 말에 차츰 소란이 진정되었지만 한 사람만은 끈질기게 말을 내뱉었다.
“나는 지금 진짜로 미치겠소. 오죽하면 이렇게 말을 하겠소. 죽기를 각오하고 하는 말이니 들어주기 바라오. 장난이 아니라 조금만 더 있다가는 옷에다 쌀 지경이오. 부탁이니 화장실 좀 보내주시오. 그러면 내 조용히 하리다. 인간적으로 이건 너무한 처사지 않소.”
마인 장군이 일그러진 얼굴로 애국노에게 말했다.
“자 뒈지 세끼거 뫄러구 따드는 갓인니꺼?”
“지금 훠정실이 급허더구 헙니더.”
“훠정실? 미친 뒈지 세끼. 첨든지 웃애더 써러구 허시우.”
너무한다 싶었지만 별 도리 없이 애국노는 마인 장군의 말을 그대로 통역했다.
“화장실이 급한 분들은 들으십쇼. 그런 분들은 참든지 옷에다 싸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나라인들 사이에서 욕설이 터져 나오며 감옥 안이 소음으로 어지러워졌다. 하나나라 말은 알지 못하지만 마인 장군은 하나나라인들이 욕설을 하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그러자 일그러진 얼굴에서 이상하게 부드러운 얼굴로 바뀐 마인 장군이 애국노에게 말했다.
“훠정실이 급헌 눔 종 허너를 뿝는더고 잔허시우.”
이완뇽이 말했다.
“화장실이 급한 분 중 한 명을 뽑습니다. 누가 가장 먼저 화장실에 가고 싶습니까?”
이곳저곳에서 고함을 질러가며 자신이 먼저 가야만 한다고 외쳐댔다. 마인 장군이 애국노에게 말했다.
“그데거 직잡 굴러 부시우.”
애국노가 나름 배려한답시고 여러 사람 중 가장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자를 가리켰다. 마인 장군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등 뒤에 있던 창을 꺼냈다.
*
소문이란 퍼지기 마련이라 성 안에 살고 있던 하나나라의 백성들 또한 마음이 불안해졌다. 임금이 성에 그대로 있는 것만 믿고 피난 가지 않았는데 이대로 꼼짝없이 죽게 생겼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시장은 아주 난리 통이었다. 사람들은 물건은 사지 않고 끼리끼리 모여 얘기하기 바빴다. 이곳에서는 아줌마, 아저씨, 처녀, 총각 할 것 없이 전부 수다쟁이였다.
“에그머니, 이제 어쩌면 좋아.”
“어쩌긴 뭘 어째. 놈들에게 잡혀 죽는 거지.”
“죽는 건 괜찮지만 놈들이 해코지라도 할까봐 무서워서 그러지.”
“까짓 꺼 심한 짓 당해봐야 죽기 밖에 더 하겠어? 그리고 난 벼슬아치들이 벼슬 믿고 설치고 다닐 때부터 이리 될 줄 예전부터 짐작했었어.
“니미럴 임금 새끼. 정치를 그따위로 하니까 허너나라 그 새끼들이 우리를 만만히 보고 공격한 거 아니겠냐고. 이 임금 새끼를 내가 찾아가서 확 죽여버릴까 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야, 너 나 좀 보자.”
“나? 나를 왜?”
“이리 와봐. 내 평소 너를 흠모해 왔다고.”
“놔! 이것 놔! 뭐하는 짓이야! 악!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이 사람아 나를 보게. 이렇게 되니 밝히는 건데 난 어렸을 때부터 자네에게 애정을 품었었다네.”
“무슨 말인가? 나는 남자이고 자네 또한 남자일세. 우리는 동성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나에게 애정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이리와 보게. 와보면 가르쳐주겠네. 어서!”
“으악! 안 돼!”
허너나라군은 공격을 하지 않았는데 지레 겁을 먹은 하나나라 백성들은 어차피 죽을 거 살아있는 동안 하고 싶은 거나 다 하고나서 죽자며 온갖 악한 짓을 서슴없이 하고 다녔다. 도덕과 법은 이들에게 아무 소용없었다. 그리하여 곳곳에서 강간, 살인, 방화, 절도 행각이 벌어졌다. 이들을 막아야할 병사들조차 말리지 않고 오히려 가담하였으니 이곳이야말로 지상 위의 지옥이었다. 그때 관료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이들은 궁궐에 출입할 시간에 각자의 집에서 재산을 정리하고 이사 갈 준비를 하기 바빴다.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허너나라의 병사들에게 돈이라도 쥐어주어 살아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그러다가 포기하고 백성들처럼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니 관료들이나 백성들이나 급한 상황에서는 매한가지였다.
*
한편 이완뇽은 그의 아내 그리고 김명도와 함께 그의 집 지하창고에 숨어 있었다.
김명도가 불안에 떨며 말했다.
“완뇽. 거리에 폭도들이 날뛰고, 그들을 막는 자는 없으니 이러다가 허너나라 놈들이 아니라 동포들에게 목숨을 잃게 생겼네. 큰일이야. 죽더라도 적들의 손에 죽는 게 낫지. 동포들의 손에 죽는다면 견디지 못할 걸세.”
“우리는 누구한테도 죽지 않네. 살아야지. 우리는 살 수 있어.”
김명도는 무언가 결심한 듯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자네는 임신한 아내가 있으니 살아야만 하겠지. 그러나 난 부양할 가족이 없네. 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목숨. 그 동안 자네에게 신세진 일이 많으니 그것을 갚는 데 쓰겠네.”
어려운 상황에서 돕는 자가 진짜 친구라더니 이 둘이야말로 진정한 친구였다. 이완뇽이 김명도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그런 소리 말게. 우리는 다 같이 살 수 있어.”
|글물결
한국에서 대형 작가로서 기대가 촉망 받는 20대 젊은 작가. 소설가로서 유쾌한 입담과 유머 섞인 조롱, 통쾌한 농담과 해학, 풍자의 능력이 주목 받고 있다. 대중성과 오락성에 문학성까지 가미한 다양하고 파격적인 장르의 소설들을 왕성하고 열정적으로 발표해오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엔 사춘기 로맨스를 달콤쌉싸름히 다룬 《인간의 사랑》, 언어전쟁 시리즈 2권인 《언어전쟁2》, <인간의 사랑> 후속 편인 《속 인간의 사랑》등이 있다.